진도 용장성

진도 용장성

고려 원종 때에 몽고 항쟁 중에 왕실이 몽고에 굴복하자 삼별초는 끝까지 저항했다.배중손 장군은 몽고군에게 쫓기어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겨와 새 나라를 세웠다. 그는 한동안 본토 일부와 제주도까지 세력권에 넣는 등의 위세를 떨쳤으나 결국 여몽연합군에게 토벌되고 말았다. 그때 삼별초가 항쟁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이 용장산성과 남도석성이다. 용장산을 두르고 있는 성이 용장산성인데 주로 석성이지만 부분적으로는 토성이 섞인 곳도 있다. 이 안에 있는 용장성은 몽고에 무릎을 꿇은 고려 조정에 반발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난을 일으킨 삼별초가 여연합군에게 패해 제주도로 퇴각하기까지 원종11년(1270) 8월부터 9개월 동안 항몽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배중손을 지도자로 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하후 온을 새왕으로 받들고 관부를 구성하고 관리를 임명하여 몽고에게 항복한 고려 조정에 대립, 정권을 세운 뒤 1,000여 척의 배에 재물과 인원 등을 싣고 진도 벽파진에 도착, 용장성에 터를 잡을 후 산성을 개축하고 성안의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각종 건물을 지어 왕을 황제로 칭하였다.오랑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왜에 국서를 보내 자신들이 유일한 정통 고려 정부임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이 진도로 온 것은 해전에 약한 몽고군과 맞서 싸우는데 적합하고 섬이 크고 기름져서 오래 버티더라도 자급자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 명량해협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거두어진 조세를 개경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할 이동로였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조운을 차단 당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은 정부는 몽고와 손잡고 진도를 몇 차례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고려 원종 12년 5월 15일 여몽연합군은 다시 진도를 공격, 10여일 동안 벌어진 격렬한 싸움에서 삼별초의 임금 온과 배중손은 죽음을 당하고 김통정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로 건너간다. 제주도로 건너간 김통정 휘하의 삼별초는 3년간의 항쟁 끝에 원종13년(1273) 2월에 여몽연합군에게 진압되고 말았다. 지금 성의 대부분은 허물어졌으나 현재 궁궐터가 거의 복원되었고 석축으로 이루어진 건물 자리 12개가 남아 있으며, 그 주변에 420m에 이르는 토성이 남아 있다. 진도읍에서 의신면 돈지 가는 길로 운림산방 못 미쳐 여몽연합군에게 쫓겨 죽음을 당한 삼별초의 왕온의 무덤이 왕무덤재에 있다.* 면적 : 산성 일원(6,026평)* 시대 :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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