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 백제 최대 가람, 미륵사지 *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삼존을 위하여 전(금당), 탑, 낭무(화랑)을 세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륵사의 창건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신앙만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백제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마한 세력의 중심이었던 이곳 금마에 미륵사를 세웠을 거라는 추측이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공예 등 각종 문화 수준이 최고도로 발휘됐을 것으로 짐작할 뿐만 아니라,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 도와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삼국의 기술이 집결되었을 것이다. 미륵사가 백제불교에서 미륵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은 분명하며, 신라최대의 가람인 황룡사가 화엄사상의 구심점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황룡사가 1탑 3금당식인 것과 달리 미륵사는 3탑 3금당식 가람배치이다. 황룡사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화엄사상, 미륵사는 미륵사상을 가람에 구현하고 있다. 미륵사는 일반평민 대중까지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미륵신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 미륵사지의 또다른 유물,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 * 미륵사지에는 두 가지의 유물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그 하나는 미륵사지 석탑이고, 다른 하나는 미륵사지 당간지주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 11호로 현재 높이 14.24m이고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거의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은 1974~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에 의하여 동쪽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임이 밝혀져 이른바 동서 쌍탑의 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탑은 그 뒤 발굴조사에 의해서 9층으로 확인되어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이 석탑을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이 탑의 양식이 그 이전에 성행하였던 목탑의 각부 양식을 나무 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이다. 당간지주란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 즉 지주를 말한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 236호로, 높이 395cm이며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유의사항
※ 문화재 보호와 쾌적한 환경을 위하여 금연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 유적지 내 반려동물 출입을 금합니다.
홈페이지
대표번호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상세소개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백제 최대의 가람
미륵사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주차장 O
화장실 O
<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도읍과
연관된 백제후기(475~650)의 유산으로
익산시, 공주시, 부여군 8개소
문화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등재유적은 익산시의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공주시의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의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나성이 해당됩니다.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이 유적들은 백제가 중국으로부터
도시계획, 건축기술, 에술, 종교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킨 뒤,
일본에 전하는 등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교류를 증명합니다.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미륵사지
백제 제 30대 무왕이 세운 사찰로,
익산의 주산인 미륵산(과거 용화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삼국유사] 무왕조에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師子寺를 가던 중
용화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자 사찰을 짓고 싶다는
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연못을 메운 후,
법당과 탑, 회랑 등 을 각각 세 곳에
'미륵사'라 하였다"는 미륵사의
창건설화가 있습니다.
<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198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륵사지 발굴조사에서는
2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1993년 미륵산 사자암 발굴조사에서
백제 및 통일신라의 기왕과 토기,
´지치2년사자사와至治二年師子寺造瓦´명
암막새등이 출토되어 [삼국유사] 기록의
신빙성을 높여주었습니다.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여러 문헌을 통해 살펴보면
미륵사는 백제 무왕의 왕권강화와
국력신장을 목적으로 조성한
동양 최대의 국가사찰이며,
조선 후기 17세기 무렵에는
폐사되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입구부터 넓은 터가 있고
작은 호수와 주변 나무들이 어우러져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한가롭게
산책하고 걷고 보고 쉴 수있는 곳입니다.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넓은 잔디밭에는 멋진 조명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은근한 볼거리도 제공합니다.
익산에서 나온 다양한 문화재를 이용해서
멋진 야외 전시물로 꾸며놓은 곳입니다.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원래의 미륵사지 원본석탑은
안쪽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멀리서보더라도 웅장한
6층석탑의 위용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
대칭으로 이동하면
후에 복원하여 새로만든
미륵사지 석탑도 볼 수 있습니다.
현대기술을 동원하여 같은 기술로 만든
석탑으로 내부에 들어가서
조금 더 자세히 석탑을 볼 수 있습니다.
<자료출처: 나미쳤나봐(finefree)님의 블로그>
백제의 역사를 품고 있는
미륵사지에서 백제의 예술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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