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애당
송애당 조선조 1633년(인조11)에 문과에 급제하고 효종 때는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경여(金慶餘)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호종하였다가 환도 후 비분강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 집을 짓고 거처하던 곳이다.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서 당호를 송애당이라 하고, 자신의 호를 이때부터 송애당이라 하였다. 건축사적으로는 기호지방 별당건축의 가장 전형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이 건물로 당시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건축미학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정침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지고 지금은 별당인 송애당만 남아있다. 주위는 담장이 송애당을 에워싸고 있다. 최근 택지개발을 하면서 대문 바로 앞에 조그만 잔디밭을 조성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높은 건물들로 채워져 버렸다. 송애당은 인접해 있는 쌍청당, 동춘당과 같은 정면3칸, 측면2칸, 팔작지붕에 5량집 구조로 되어있다. 다만 대청의 위치와 온돌방의 위치가 앞서 두 건물과 바뀌었고 반침(상부반침 하부아궁이 함실)이 다른 별당에서는 반칸이 밖으로 튀어나온 데 반해 여기서는 반칸이 들어가 붙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후면을 제외한 3면은 좁은 툇마루를 돌려 설치해 두었다. 대청마루의 창호는, 정면2칸을 4분합 띠살문 들어열개로 하고, 측면과 후면은 장판문 쌍여닫이로 하였다. 온돌방과의 사이는 3분합 맹장지 들어열개로 되어 있다. 온돌방 전면에는 머리중방 위에 쌍여닫이 띠살문, 측면은 외여닫이 띠살문으로 되어 있다. 가공석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방형 주초석을 놓고 8치각 방주를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조각된 보받침인 양봉(梁棒)이 내외로 돌출 되어 있다. 세부적으로는 쌍청당보다 오히려 동춘당과 비슷한 구조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청 천정은 연등천정인데 합각부분만 우물반자로 마감하였고 온돌방은 우물반자 위에 종이 바름을 하였다. 용마루 끝에 붙어있는 기와는 마치 잡귀라도 쫓을 듯 눈을 부라리고 있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다. 적당히 퇴색된 목재의 색깔이 고건축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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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대덕구 계족산로17번길 60 (중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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