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대

월영대

신라 말기 문창후(文昌候) 해운(海運) 최치원(崔致遠)선생이 대(臺)를 쌓고 해변을 소요(逍遙)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조선초 초기 학자 이첨(李籤)의 시에 『숲 끝에 집 짖고 월영대를 거닐었네』하였다. 이는 최치원이 산사(山寺)를 두루 다니다가 마지막 정착지로 이곳을 택하여 가족과 더불어 살다가 신라 멸망을 예견하고 합천 해인사(海印寺)로 들어가셨다. 최치원선생이 돌아가시고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한 고려, 조선조때 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게되니 이곳은 우리나라 선비의 순례지가 되었다.고려때, 문신 정지상, 명종때 학자 김극기(金克己), 고려 충선, 충숙왕때 채홍철(蔡洪哲),고려후기 학자 안축(安軸), 조선조때 초기의 대학자 이첨, 태종때 문신 정이오(鄭以吾),세조때 문신 박원경, 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조때의 의사(義士)정문부, 조선조 후기의 박사해(朴師海), 손기양(孫起陽), 이민구(李敏求), 신지혜 등이 이곳을 순례하고 남겨 놓은 명기사 『동문선』(東文選), 『여지승람』(與地勝覽)에 남아 있다. 해서체(楷書體)로 월영대라 새겨진 입석이 있는데 최치원의 친필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월영대의 입석이 있는데 세자(細字)는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조선조 숙종 17년에 최위(催瑋)가 창원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이 『대(臺)』를 정화하고 『천세만세에 유린되지 말라』고 한 유허비(遺墟碑)를 동편 중앙에 세웠고, 서편에는 1930년경에 최씨 문중에서 추모비를 세워 팔작지붕 비각안에 안치하였다.『삼국사기』『보한집』(補閑集)『역옹패설』(轢翁稗說)『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문선』(東文選)『읍지』(邑誌) 등 많은 기록을 상고해 보면 그 경관이 아름답고 고려 조선조에 이르는 천여년 동안 많은 선비, 시문학에 대가들이 최고운의 학덕을 흠모하여 끊임없이 찾아준 아름다운 바닷가의 대(臺)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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