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성세마대지

독산성세마대지

독산성은 사적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성의 총 연장은 1,100m이며 내성은 350m이 달하는 아담한 산성이다.독산성의 처음 축조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독산성의 위치적 특성이 용인, 양지 간에 있는 고성과 남한산성이 기각지세를 이루어 왕도의 문호를 굳게 한다는 전략상의 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백제가 쌓은 고성이었고, 신라통일기나 고려시대에서도 군사상 요지로 되어 왔다. 독산은 본래 석대산, 향로봉이라고 불려왔고 조선시대에는 독산성이라 불려왔으나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폈던 진묘(眞妙)한 병법전략에 연유해 지금은『세마산』또는『세마대』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의 세마대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 건물이있다. 독산성은 군사기지로서의 주요 위치에 놓여있긴 하지만, 샘물의 부족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1593년(선조26) 명나라 원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남하함에 전라도 순변사이던 권율장군이 명군과 호응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자 2만 명의 군사로 이곳에 진을 치고 대군과 대치한 독산성 전투는 너무나 유명하다.그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군은 이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탐정군사에게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냈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군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백마를 산 위에 끌어올려 흰쌀을 말에 끼얹어 말을 씻는 시늉을 하게 하였다.이것을 본 왜군은 성내에 물이 많은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샘물의 부족한 단점을 권율장군이 슬기롭게 극복한 세마대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1957년에 복원되었다. ※ 1977년 간행된 전국문화유적총람에 의하면「독산성 및 세마대지」의 연혁에 대해 백제때 축성된 고성이었고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중요한 요지로 되어 왔으며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주둔했고 변이중으로 하여금 화포를 발명, 제작케 하여 행주대첩에서 승전케 하였다.또한, 임란후 조정에서 독산성에 세마대를 장엄하게 세우고 병기창을 두어 무예연습을 하게 하였으며 정조16년(1792년)에 독산성과 세마대를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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