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선생묘

이익선생묘

실학의 대가 성호(星湖) 이익(李瀷)선생은 평안도 운산에서 1681년(숙종7년)부친 이하진(李夏鎭)이 유배길에 운산에 와 있을때 태어났다. 이익 선생은 그가 평생토록 떠나지 않고 거주하며 학문의 커다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경기도 안산군 첨성리(瞻星里: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일동)라는 지명에서 『星(성)』자를 따라 그의 호를 지었다. 이익선생은 1705년(숙종 31년) 증광문과(增光文科)를 보았으나 낙방하고 이듬해 형 잠(潛)이 당쟁으로 희생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안산 첨성촌(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머물며 일생을 학문에 전념하였다.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여 실학자의 중조(中祖)가 되었으며 그의 학풍은 그후 안정복, 이가환, 이중환, 정약용 등에게 계승되었다. 이익선생은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데에만 몰두하여 천문, 지리, 의학, 재정지방제도, 과거제도, 학제, 병제, 관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비판과 이상 및 사상을 널리 써놓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을 비롯한 곽우록(藿憂錄), 성호문집(星湖文集)을 남겼으며 조정에서는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 학덕을 높이 평가하여 이조판서에 추서하였다. 선생은 1763년(영조 39년)에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위치 및 구조 *그의 묘소는 수원.인천간 산업도로가 바라보이는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는 데 묘소의 석물로는 묘비(墓碑)와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이 있다. 봉분의 규모는 600×550×220cm이다. 묘비의 재질은 오석(烏石)이며 전면에는 "星湖先生 李公諱瀷之墓 贈 貞夫人 高靈申氏左 贈 貞夫人 酒川睦氏右"라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공이 사후 204년이 되는 1967년에 건립되었으며 규모는 옥개석이 90×60×50cm이고 비신은 146×57×26cm, 기대석100×62×20cm이다. 상석(床石)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규모는 121×83×58c 이며 향로석은 39×28×39cm이다. 망주석의 높이는 165cm이다. 두향(頭向)은 북향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묘소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무덤 앞에 안내판이 있다. 묘소 우측에는 사당이 있다.* 시대 - 조선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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