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포교당(경산)
예로부터 우리는 정토 신앙을 뿌리 삼아 불국정토를 이루어 우리가 소망하는 원을 빌어왔다. 그러나 번뇌와 욕망으로 뒤엉킨 업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수많은 뭇 중생들이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정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미타 부처님은 한량없는 광명을 지니시고 이러한 중생의 번뇌로부터 일어나는 무명과 무지를 일깨워 나고 죽음이 없는 열반의 세계로 중생을 인도하고자 큰 원력을 세운 불보살이다. 더욱이 말법시대의 근기를 가진 중생들에게 그 명호를 수없이 되뇌이게 만들어 중생들이 정토에 나도록 해주는 부처님이다.경북 경산의 여여한 아미타도량인 은해사 하양포교당은 포교당으로는 그 터가 전국에서 다섯손가락에 들 만큼 1천여평의 드넓은 도심분지에 자리해 이 곳을 찾는 지역불자들에게 환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기도처를 제공하고 있다. 하양포교당은 지난 1971년 은해사가 일타스님 문중으로 발돋움하면서 경산 하양지역 포교의 최적지가 경산포교당이라는 판단 하에 말사로 편입시켜 지금까지 팔공산 장엄화장세계 미타도량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극락전을 비롯한 여러 불사를 통해 사격을 일신하고 있으며, 특히 꾸준히 이어온 어린이법회와 경북불교대학 등을 통해 지역불자들과도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사람들 중에서 가장 높으신 이시여! 삼계(三界)에 비할 바 없으리이다. 그의 복되심을 찬양하고 그대를 따라 가까이 가리이다"『관음경』에 아미타부처님을 찬탄한 이 같은 게송처럼 하양포교당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현세를 극락정토로 하루빨리 앞당기는데 정진을 다하는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창건배경 및 역사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말사인 하양포교당은 창건시기나 창건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다만 조선 초기에 창건된 사찰로서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사찰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상실한 채 유생들의 객사(客舍)로 함께 쓰여져 오다가 1927년 지석담(池石潭) 스님이 사찰의 재건을 위해 중수했다는 사실만 전해져 온다. 지석담 스님은 사찰의 중수와 아울러 은해사에서 부처님을 모셔와 봉안한 것이 지금까지 극락전 본존불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예전의 기록이 전무한 관계로 하양포교당의 창건주라고 하면 중창주인 지석담 스님이 보통 일컬어지고 있다. 이후 주지로서 알려진 고승으로는 고봉, 현고, 보원, 동관, 유곡스님 등이 주석했으며 지난 2001년 주지로 부임한 성본스님이 쇠락한 사역(寺域)을 정비하고자 5평 남짓한 극락전을 34평으로 신축하고, 칠성각 중?보수, 설법전 부처님 봉안, 공양간 건립 등 사격을 일신하고 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번호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도리3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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