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신재효고택
판소리를 집대성, 국문학사에 뛰어난 족적을 남긴 동리 신재효 선생(1812~1884)의 고택이다. 판소리박물관 바로 뒷편으로, 뒷뜰은 동리국악당(동리는 신재효의 호)과 모양성(왜구침입에 대비, 1453년 세운 자연석 성곽. 일명 고창읍성)에 대고 있다. 중요 민속자료 제 39호로 지정된 신재효의 고택은 1850년 경에 지어졌으며, 현재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진 사랑채와 오동나무, 우물 등이 남아 있다. 판소리문학의 이론가, 연출가이자 광대의 지휘자라는 평을 듣고 있는 신재효 선생은 1812년에 신광흡의 1남 3녀 중 외아들로 이곳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동리 신재효는 애초 소리꾼이 아니라 재산이 넉넉한 중인 출신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를 기반으로 집안을 번창시키면서 판소리의 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동리가에서도 노래했듯이, 그는 "시내 위에 정자 짓고/ 정자 곁에 포도시렁/ 포도 곁에 연못이라…"를 읊을 줄 알았던 풍류가객이기도 했다.동리선생은 말년까지 이집에 살면서 노래청을 두고 수많은 제자를 불러 명창들을 길러냈으며, 토끼타령, 박타령,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가루지기타령 등 6마당의 판소리 사설을 편술했다. 여섯 마당 판소리 중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은 너무 음탕하다고 하여 부르기를 꺼려 왔던 바람에 그 가락이 잊혀지고, 오늘날 다섯 마당만이 전수되어 오고 있다. 신재효 고택은 1979년에 보수, 정화되었다.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 고택 뒤에는 동리국악당을 개관, 고창군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고택을 한바퀴 돌아보는 동안 국악당에서 틀어놓은 판소리가 내내 귓전을 울린다. 생가 뜨락 한 켠, 우물 뒷편 담벼락에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동리와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중의 하나가 도리화가 라는 노래에 담겨 있다.이 노래는 제자이면서 애인이었던 진채선이 대원군의 인정을 받아 운현궁의 기생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자 그이를 그리면서 지은 것이다. 또한 판소리 연구학자들은 동리 선생이 귀명창이었다고 평한다. 실제 소리는못했으나 소리를 이해하고, 사설과 소리의 궁합을 맞출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소양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신재효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일은 동리국악당 탐방으로 이어진다. 고택 바로 뒤의 이 건물은 신재효 선생을 기념하고 국악발전을 위해 건립된 곳으로 가야금, 판소리, 민요, 농악 등을 교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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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100 (고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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