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경과 류인호 묘역

신선경과 류인호 묘역

'문화류씨 묘역'에는 임진왜란 때 이항복(李恒福)과 함께 3등 공신으로 선조를 보필한 문양공(文陽公) 류희림(柳希霖), 그 아버지 증가선대부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역임한 문원군(文原君) 류복룡(柳伏龍)과 그 부인 평강(平康) 채씨(蔡氏)의 묘, 그리고 공조참의(工曹參議) 류인호(柳仁濠)와 숙부인(叔夫人) 거창 신씨의 합장 묘가 있다. 거창신씨 묘역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선경(愼先庚)의 묘를 비롯한 거창 신씨들의 가족 묘역이다. 거창 신씨의 시조는 원래 중국 송(宋)나라 개봉부(開封府) 사람으로 지사라는 벼슬에 있던 신수(愼修)다. 그는 송나라와 고려의 외교 관계를 개설하기 위해 사절단으로 고려의 수도 개성에 왔다가 귀화하여 고려인이 됨으로써 거창 신씨의 시조가 되었다.신수는 고려 문종 29년(1075) 시어사(侍御史)가 되었고 숙종 때 수사공 우복야참지정사(守司空右僕射參知政事)에 이르러 사직하였으며 시호는 공헌(恭憲)이다. 신선경은 세조 원년(1456) 사헌부장령을 거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묘역은 약 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정부인(貞夫人) 한씨와의 쌍분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 묘비, 상석이 각각 1개씩 있고 문인석이 1쌍이 서 있다. 묘비는 윗 부분이 연꽃무늬로 장식된 갓 모양을 하고 있는 등 조선 초기의 특유한 형태로 묘비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그리고 동쪽 옆에 문화 류씨인 공조참의 류인호(柳仁豪)와 숙부인(淑夫人) 거창 신씨의 합장묘가 있는데 여기에는 묘비,상석이 각각 1개씩 있으며 망주석 1쌍 서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이항복과 함께 3등공신으로 선조대왕을 보필한 문양공 류희림, 문원군 류복룡, 공조참의 류인호의 묘소이다.류희림은 명종 15년(1560) 1,000여명의 성균관 유생을 대표하여 불교를 비판하고, 선종, 교종 모두 폐지하자는 상소를 올렸다. 명종 16년(1561)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문한관(文翰官)이 되었다. 검열, 박사, 정언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선조 3년(1570) 지평이 된 이후 계속 중앙에만 머물러 사헌부장령, 집의를 역임하였다. 선조 14년(1581) 형조참판으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나 가지고 간 방물 중 면주(綿紬) 10필과 흑마포(黑麻布) 11필이 부족하여 처벌을 받고 파직되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첨지중추부사로서 왕을 호종하여 좌승지로 발탁되었다. 이후 1593년 동지중추부사, 1594년 예조참판, 1597년 동지돈녕부사가 되었다. 죽은 뒤인 선조 37년(1604)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과 문양공에 봉해졌다.묘소는 오금공원 내 관리사무소 서쪽에 남향으로 3기가 남북 방향으로 놓여 있다. 맨 위(북)쪽에 있는 류희림의 묘 앞에는 상석(床石)이 있고 그 앞 좌 기둥에 다람쥐 형상이 조각된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각각 1쌍씩 서 있다. 아래쪽의 2기는 좌우로 배치되어 있으며 류복룡과 그 부인인 평강 채씨의 묘이다. 두 무덤 사이에는 비석이 있고 그 앞에 망주석과 문인석 각각 1쌍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옆에 다시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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