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선림원지
선림원지는 설악산국립공원 남쪽의 미천골에 자리한 신라시대의 절터로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원시의 자연이 아주 잘 보존된 미천골 자연휴양림 안에 있다. 신라법흥왕 때 창건했다가 고려말에 폐사되었다는 선림원터에는 지금도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와 석등(신라 정강왕 원년 건립,886), 3층석탑, 부도 등의 보물급 문화재가 남아 있다.* 선림원지(터) 禪林院址 - 도기념물 제53호선림원지는 도기념물 제53호(1982.11.3)로 서면 황이리 424번지에 위치한다. 1948년 10월에 정원(貞元) 20년(804) 명(銘)이 있는 신라 범종이 출토된 바 있어 유명하다. 장대한 석축 위에 있는 약3,000평의 절터에 4점의 보물이 자리하고 있다. 선림원지 발굴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선림원은 804년경에 창건되었으며,그 후 홍각선사가 선림원에 살았던 때 또는 그가 열반한 직후에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1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말미암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현재 절터에는 정면 3칸, 측면 4칸의 금당지와 조사당지의 주초석이 보존되어 있으며, 1985년에 동국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지를 확인하고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양양 지역의 찬란한 불교문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선림원지 3층석탑(三層石塔) - 보물 제444호양양에서 홍천 방면의 56번국도변의 미천골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약1.5km되는 미천골 계곡 건너편에 축대를 쌓아 놓은 곳이 선림원지인데 그 동편으로 법당지가 있어 현재도 방형의 주춧돌(폭60cm)이 3~4m간격으로 여러 개 묻혀있다. 서쪽에도 한 단의 석축을 쌓고 석등을 세웠으나 그곳에는 법당지로 추정되는 유구(遺構)는 없다. 선림원지 3층석탑은 2층기단 위에 세운 방형의 3층 석탑으로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일반형이다. 기단부의 짜임새나 각 부분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때로 추정되며, 1965년 복원공사 전에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4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되었다.* 선림원지 석등(石燈) - 보물 제445호선림원지의 서북쪽에 있으며, 1965년 이전에는 붕괴되어 사방에 흩어져 있었던 것을 그 해 11월 수습복원하여 석등의 모습을 되찾았다. 높이 2.92m의 이 석등은 이웃해있는 3층 석탑 및 부도와 1948년 10월에 발견된 '貞元20년'銘, 즉 신라 애장왕 5년(804)에 만들어진 동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선림원지의 석등은 네모난 지대석 위에 상, 중, 하 대를 모두 갖추어 만든 8각의 신라시대 기본형 석등이다. 8각의 하대옆면에는 각각 안상이 음각되고, 그 위 복련에는 귀꽃치장이 뚜렷이 새겨졌으며, 복련 윗면에 구름무늬와 1단의 높은 괴임을 새겨냈다. 간석은 중간부분에 타원형 꽃잎이 8곳에 배치된 고복형으로서 그 윗부분에는 대칭적인 연화판을 새겼다. 간석 상,하단에는 권운문이 있으며 상대석에는 겹잎 앙련이 있다. 화사석에는 4개의 장방형 화창이 있는 외에 각면 아래쪽에 횡으로 장방형의 액을 마련했다. 그 액안에 각각 1구씩의 안상을 새겨넣었다. 옥개석은 전각에 귀꽃이 있고 낙수면은 물매가 급하지 않으며, 8각의 합각은 사선이 뚜렷하고, 그 정상부에 복련이 새겨져있다. 상륜부에는 작은 원형의 연화대석이 있을 뿐이다.*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禪林院址 弘覺禪師塔碑) - 보물 제446호선림원지에 위치한 이 비는 현재 귀부(龜趺)와 이수만이 남아있고, 비신조각(높이 53m) 일부는 경복궁에 보관되어 있다. 판독가능한 글씨는 150자 정도이며, 비문 판독결과 건립연대는 정강왕 1년(886)으로 추정하고 있다. 1966년 9월 보물 제446호로 지정되었다.* 선림원지 부도(浮屠) - 보물 제447호이 부도는 선림원지 3층석탑, 석등, 홍각선사탑비와 함께 절을 구성하였던 것으로 1965년 8월에 각부분을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는데 원래의 위치는 뒷산 중턱으로 약50m쯤 올라가야 한다. 건립연대는 886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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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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