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동오층석탑

신룡동오층석탑

신룡동에서 낙암산(樂菴山)쪽으로 약300∼400m 떨어진 외딴 민가(民家) 옆에 우뚝 솟아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기단부(基壇部)의 중석(中石)과 지대(地臺)석 일부가 파손되고 상층기단의 면석(面石) 이매(二枚)가 결실된 상태였던 것을 1981년 9월 완전히 해체 복원하였다. 이 때 1층탑신 상면 중앙의 사이공(舍利孔)에서 사각방형(四角方形)의 금동사이함(金銅舍利函)과 사이병(舍利甁), 그리고 몇 조각의 목편(木片) ,죽편(竹片) 등의 사이구(舍利具)가 발견되었다. 사이구(舍利具)는 국립광주박물관(國立光州 博物館)에서 보존(保存)하고 있다.석탑(石塔)의 형식(形式)을 보면 기단부(基壇部)는 이중기단(二重基團)이며 지대석(地臺石)은 4개의 석재(石材)를 결구(結構)하여 하대석(下臺石)을 겸했고, 4면에 귀기둥(隅柱)과 버팀기둥(탱주撑柱)을 각출(刻出)하여 일면(一面)을 이구(二區)로 구분하였다. 그 위로 하대갑석(下臺甲石)을 얹었는데 하대갑석(下臺甲石)은 2매의 판석(板石)으로 짰으며 갑석 윗면은 경미한 경사를 나타내고 1단의 각형괴임을 표현하였다. 상층기단은 4매의 면석과 갑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면석(面石)의 4면에는 역시 귀기둥과 버팀기둥이 표출되어 있고 한 장으로 된 갑석(甲石)은 아래 쪽에는 부연(副椽), 위 쪽 중앙(中央)에는 1단 괴임을 만들어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다.탑신부(塔身部)는 각층마다 옥개석(屋蓋石)과 탑신(塔身)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만들어 졌는데 1층 탑신은 특별한 조식(彫飾)이 없이 4면의 양쪽 모서리에 귀기둥을 나타냈다. 옥개석 상면의 우동(隅棟)은 뚜렷하고 추녀를 내려와서는 완연하게 되바라졌으며 층급받침은 4단이다. 이처럼 1층부터 3층까지 4단이던 층급받침은 4∼5층에서는 더욱 간화되어 3단으로 줄어들었다. 탑신도 2층 탑신부터는 갑자기 높이가 짧아지면서 5층까지 알맞게 체감되어 5층탑이면서도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갖추어져 있으나 석질(石質)과 색감(色感)이 달라 후보(後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石塔)의 형식(形式)을 살펴보면 이중기단(二重基壇)으로 상하층 기단 각면에 귀기둥과 버팀기둥이 있고, 각 옥개석 상면에 탑신을 받는 1단괴임이 있는 등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그 고준(高峻)한 형태와 간화된 층급받침 등으로 미루어 고려(高麗) 초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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