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사(최경회장군)

충의사(최경회장군)

충의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삼장사의 일원으로 순국한 최경회 선생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선생의 자는 선우, 호는 삼계, 당호는 일휴당이며 본관은 해주로서 화순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22)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형조좌랑, 옥구.장수.무장현감, 영암군수, 영해.담양부사 등 내외 관직을 지냈다. 1591년 어머니 상으로 관직을 떠나 고향에서 시묘하고 있을 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운, 경장 두 형과 아들 홍기, 조카 홍재, 홍우와 함께 의병청을 설치하고 수천의 의병을 일으켜 전라우도 의병장이 되어 상복차림으로 북상하여 금산.무주의 왜적을 격퇴하였다.경상우순찰사의 지원 요청을 받고 "영남도 우리나라 땅이다."하고 달려가 1차 진주성 싸움의 외원으로 대첩을 거둔 뒤 바로 거창에 주둔하고 개령지방의 왜군을 공격하여 성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우는 등 영남 7읍을 평정하니 그 전공으로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특별 임명되었다. 이해 6월의 제2차 진주성 싸움에도 참가하여 9주야의 항전 끝에 중과부적으로 성이 무너지니 조카 홍우를 탈출시켜 조복과 언월도를 고향의 중형께 보내고, 김천일, 고종후 장군 등과 함께 촉석루에 올라 서사일절을 남기고 남강에 투신 순절하니 그의 나이 62세였다. 뒤따라 논개가 왜적장을 껴안고 순절하였고, 중형 경장도 의병대장이 되어 사천, 고성 등지의 왜적을 격퇴하였으며 장형 경운도 오성산성에서 항전하다가 부자가 순절하였다. 뒤에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의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진주의 창열사, 능주의 포충사,화순의 삼충사에서 제향해 오다가 고종 때 포충사와 삼충사는 훼철되었고 오늘에 이르러 국민의 숙원으로 2003년에 준공하여 후세를 위한 충효 교육의 도장으로 삼는다.


홈페이지

www.hwasun.go.kr



주소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충의로 409 (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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