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산성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1232년(고종 19) 강화로 수도를 옮겼을 때 처음 성을 쌓았는데, 그 때는 지금보다 규모가 작았으나 조선 전기에 개축하였는데, 1637년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숙종 때 전면적으로 성을 보수하면서 동락천 건너 남산까지 포함시켜 크게 확대하였으며 북산, 남산, 견자산으로 이어진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가 7,122m입니다. 4개의 대문, 4개의 암문(暗門), 2개의 수문(水門)이 있고, 북산과 남산 정상에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북장대, 남장대가 있었습니다. 장인대(丈人臺)라고도 불린 남장대는 1745년(영조 21) 강화유수 황경원이 세웠는데, 2010년에 복원되었으며 4대문 가운데 북문에는 원래 누각이 없었는데 1783년(정조 7)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올려 온전한 형태를 갖췄다고 합니다. 남문은 1955년에 문루가 무너졌는데 1975년에 복원했고,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江都南門’ 편액을 썼다고 합니다. 2003년 동문이 새로 세워지면서 모든 성문이 복원되었으며 동문은 망한루(望漢樓), 서문은 첨화루(瞻華樓), 남문은 안파루(晏波樓), 북문은 진송루(鎭松樓)이며 성의 동쪽 부분은 많이 없어졌으나, 남쪽, 북쪽과 서쪽의 산자락 부분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으며 조선 후기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들어왔고,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 일본군이 들어오는 등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휴무정보
연중무휴
대표번호
주소
인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 국화리, 신문리, 관청리, 남산리
상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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