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고동 부군당
서빙고동 부군당은 조선시대 이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수호와 주민의 안녕을 위해 세운 제당(祭堂)이다. 이 당은 인조 13년(1635)에 중수(重修)하였으며, 당을 처음 세운 시기는 15세기 말 또는 16세기초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당은 80여 평의 대지 위에 3평 내외의 맞배지붕으로 된 한옥으로 정면에는 한칸 규모의 본당이 있고 왼쪽에는 하주청이라고 부르는 150평 정도의 제물청(祭物廳)이 있는데 부엌ㆍ마루ㆍ온돌방ㆍ창고가 있다. 주위는 돌담으로 둘러 있고 대문은 기와를 얹은 솟을대문 형태로, 문의 가운데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제당 내에는 3점의 신상(神像)이 있다. 정면에는 당의 주신(主神)인 태조 이성계와 부인 강씨의 신상이 있고 왼쪽 벽에는삼불제석(三佛帝釋)이 모셔져 있으며, 청색·적색·황색으로 되어있는 휘장으로 보관되어 있다. 태조상(太祖像)은 깃털이 달린 주립(朱笠)을 쓰고 청색 도포를 입었는데 소매와 옷고름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어깨 위로 화살이 담긴 화살통을 메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붓 같은 것을 잡고, 왼손으로 붉은색 옷 소매를 잡고 호피(虎皮)의자에 앉았으며, 좌우에는 사모관대를 한 신하가 한 사람씩 서 있다.옆벽의 삼불제석은 큰 연꽃 위에 흰 장삼에 긴 염주를 목에 두르고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며 가운데 제석의 머리 뒤에는 파란색, 좌우 제석에는 빨간색, 그리고 주위에는 흰색으로 덮힌 광배가 보인다. 이 세 신상의 크기는 가로 43cm, 세로 85cm로 모두 견본채색(絹本彩色)으로서, 무신도(巫神圖) 중에서 매우 뛰어난 것으로 보여진다. 제당 내에는 3개의 현판이 있는데, 서까래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崇禎紀元上之十三年乙亥四月十八日重建'이라 쓴 것으로 보아 인조 13년(1635)에 중건했다는 내용으로 부군당의 역사를 추정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현판은 '老人?座目幷序'라 쓰고 끝에 '辛卯五月'이라 하였으며, 그리고 '里中契員座'이란 내용에는 '光武七年癸卯五月' 이라 쓴 현판이 있다. 하주청 마루에는 '府君堂重修記'란 현판이 있는데 정묘(丁卯, 1927) 5월에 만든 현판으로 모두 부군당의 역사를 추정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서빙고동 부군당은 1910년대 초기에 일제가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 예전의 특무대 자리에서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제관 선정은 '서빙고동부군당치성위원회'에서 주관하며, 음력 정월 초하루 상오 11시경에 제를 올린다. 10일 전부터 준비하는데 임원은 9명을 선정하며 선정된 제관은 이 기간 동안 목욕재계하고 궂은 곳에 출입하지 않는 등 엄격한 금기(禁忌)를 지킨다. 제사의식은 유례식(儒禮式)으로 초헌관(初獻官)이 분향한 다음 잔을 드리고 축을 고한 다음 4배하고 다음 아헌관(亞獻官)이 분향·헌작하고 4배한 다음 삼헌관(三獻官:終獻官)이 분향·헌작(獻酌)하고 4배한 뒤 소지(燒紙)를 올리고 일반 참배객이 4배한다. 이 의식이 끝나면 부군당 할머니라고 부르는 만신(萬神:女巫)이 나와 제비(祭費)를 낸 각 가구별로 소지를 올리게 하고 축원해 준다. 제사가 끝나면 '반기'라 하여 제물을 고루 나누어주는 음복(飮福)이 시작된다. 이 부군당을 중심으로 마을의 수호와 주민의 안녕ㆍ질서ㆍ화목을 기원하며 살아왔던 옛 모습이 잔존해 오고 있어 토속신앙(土俗信仰)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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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59길 3-6 (서빙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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