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성주사지

보령 성주사지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곳으로 아주 번성했던 사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주사는 백제 법왕에 의해 오합사(烏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법왕이 왕자일 때 삼국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위령하는 뜻으로 세웠다고 한다. 성주사로 개명된 것은 통일신라 말이다. 성인이 거하는 절이라는 뜻인데, 성인은 신라 말기의 명무염국사를 일컫는다. 무염국사가 성주사의 주지로 있을 당시 성주사는 불전 80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 등 천여 칸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 이때 성주사에서 정진하는 수도승만 2,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백제 시대에서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는 역사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사적 307호로 지정된 성주사지에는 현재 국보 8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보물19호 오층석탑, 보물20호 중앙삼층석탑, 보물47호 서삼층석탑, 지방문화재인 동삼층석탑과 석계단과 석등이 있다. 그 간 발굴 조사에 의해 금당지, 삼천불전지, 회랑지, 중문지 등의 건물터가 드러났다. 절터 서북쪽에는 제법 멋을 부려 세운 전각이 있는데, 그 안에 부도비가 있다. 무염국사 입적 두해 뒤에 세운 부도비로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 선생이 글을 짓고 그의 조카 최인연이 글씨를 썼다.낭혜는 무염국사의 시호이며, 신라 태종 무열왕의 8대손으로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열세살의 나이에 입문한 낭혜는 21세에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 그곳에서 선종을 익혔다. 귀국하여 성주사의 주지가 되어 신라의 선종을 크게 융성시킨 낭혜는 88세의 나이로 입적하였으며,진성여왕이 낭혜를 기리기 위해 시호와 함께 부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이 부도비는 전해오는 신라의 부도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높이 4.5미터, 폭1.5미터, 두께42센티미터로 거의 원형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또한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 역시 조각이 화려하고 뚜렷하여 신라 부도비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비신의 재질은 성주산이 주산지인 남포오석이다. 재질이 강하고 아름다워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는 남포 오석의 비신에는 5천여자의 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심연동 계곡을 등지고 성주사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5층석탑이다. 오층석탑 뒤편에 세기의 석탑이 어깨를 나란히 서있다. 모두 삼층석탑으로 신라 하대의 것으로 짐작된다. 성주사지는 자녀들과 둘러보기에 더욱 좋은 곳이다. 성주산 휴양림과 석탄박물관, 심원동계곡 등의 관광 명소가 성주사지 가까운 곳에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주요문화재성주사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8호)성주사지 5층석탑(보물 19호)성주사지 중앙삼층석탑(보물20호)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47호)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 2021호)성주사지 석등(도지정 유형문화재 33호)성주사지 석계단(문화재 자료 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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