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 생가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여명기를 개척한 난파 홍영후(1898~1941년)의 생가이다. 홍난파는 1898년 4월 10일 홍순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12년 YMCA 중등부를 졸업하고 1915년 조선정악전습소양악부를 마친 뒤 동 전습소의 교사가 되었다.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뒤 귀국하였으며, 1920년「봉선화」를 작곡하였다. 1922년 연악회(硏樂會)를 창설하였고 1925년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한편 한국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발간하였을 뿐 아니라 소설도 발표하여 문학적 재질도 보였다.1926년 다시 일본 도쿄 고등음악학교에 편입하고 이듬해 도쿄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1929년 귀국하여 중앙보육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1931년 미국으로 건너가 셔우드음악학교에서 연구하고 1933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이화여전 강사를 지낸 뒤 경성보육학교 교수로 전임하였다. 1935년부터「백마강의 추억」등 모두 14곡의 대중가요를 나소운이라는 예명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1941년 8월 지병인 늑막염이 악화되어 43년간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봉선화」,「성불사의 밤」,「옛동산에 올라」등 가곡과,「달마중」,「낮에 나온 반달」 등의 동요곡이 있다.현재의 생가 건물은 당초 멸실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한 것으로 목조 초가 4칸의 ‘ㄱ’자형 구조이다. 방 2개와 부엌으로 단촐하게 구성된 집에는 아담한 마당이 딸려있고 건물 처마 밑으로 난파의 초상화와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을 찍어놓은 사진 몇 장이 걸려 있다. 아늑한 마을에 자리한 초가를 둘러보노라면 ‘고향의 봄’ 가락이 곳곳에서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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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홍난파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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