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

이회영은 이조판서 이유승의 4남으로 태어나 성장했다. 1905년에 을사늑약 체결의 음모를 저지시키고 무효화 하는 운동을 주도하였고, 고종황제를 설득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파견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그러나 1910년 한일병탄이 되자 6형제 전원과 일가족 50여 명이 전 재산을 정리하여 망명을 떠났다. 그는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개소하였고, 1912년에는 ‘합니하’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무관학교 교육을 시작한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할 때까지 독립군 간부 3,500여명을 양성하는 성과를 이루고 독립전쟁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복군을 창설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와 더불어 고종황제를 설득하여 망명계획을 추진하였다.  상해 임시정부가 구성되어 그는 의정위원으로 참여한다. 이후 아나키즘 운동과 ‘의열단’ 조직을 지원함과 동시에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여 흑색공포단을 산하에 두고 의혈투쟁에 매진한다. 중국의 항일부대와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하도록 현지 지도 차 잠입하던 중 대련에서 체포되어 여순 감옥으로 이송한다. 그는 이곳에서 모진 고문과 굶주림으로 순국하는데 이때가 선생의 나이 66세인 1932년 11월 17일의 일이었다. 이러한 이회영 선생의 공적을 기려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하였으며, '이회영 이시영 6형제 집터' 표지석이 위치한 서울YWCA 앞에 함께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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