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목장성비

장기 목장성비

* 장기 목장성동을배환의 장기목장은 울산목장에 소속되었으며, 구룡포읍 석문동에서 동해면 흥환리까지이며 마성(馬城) 주의의 4190把(발 약 6.3km)이며 삼정동(三政洞)에 목아문(牧衙門)을 설치하여 말을 관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전국의 마정(馬政)은 병조(兵曹) 및 사복시(司僕寺)에서 관장을 하였고, 지방 마정은 관찰사 밑에 감목관(監牧官 종6품)이란 실무 담당자를 두어 관리토록 하였다. 강사리에 있는 해봉사(海蓬寺)의 명월암(明月庵)에서 말목장을 위한 제를 올리도록 하였다.흥인군 이최응의(흥선대원군의친형)비각 신축을 위해 터고르기를 하던중 발견된 이 비석에는 [물목김부찰 노연 영세 불망(蔚牧金副察魯淵永世不忘)...]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가로 32cm 높이 75cm 두께 22cm크기의 이 비석은 연대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비석이 발견된 인근에 흥인군 이최응과 목장을 관장하던 감목관(監牧官) 민치억의 공을 기리는 불망비가 세워져 있어 같은 시대인 1882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비석에는 울목(蔚牧) 이라는 명문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볼 때 이는 군마등 말을 키우던 장기 목장성이 울산 목장의 관할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흥인군 이최응:1815(순조15)∼1882(고종19) 조선말기의 문신, 자는 양백(量佰), 흥선대원군의 형, 흥인군에 봉해졌으며 1865년(고종2) 경복궁 중건때 영건도감제조(營建都監提調)를 지냈으나 쇄국정치를 반대하여 대원군과 반목이 심했다. 1873년 영의정에 올랐다. 이 공덕비의 내용은 장기 목장성에 속한 7마을(七防)이 있었는데 모리배들이 세금을 많이 걷어 들여 천여 백성이 살아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흥인 대감께서 특별히 백성들의 뜻을 살피셔서 조그마한 잘못도 밝히고 많이 거둬들인 고질적인 폐단을 없애 버리며, 그 근원을 뿌리 뽑아 버리니 흩어졌던 백성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고, 목장전체가 편안하게 되어 공덕비를 세우게 되었다.감목관 조선시대의 외관직(外官職), 지방의 목장(牧場)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원으로 대개 부사(府使) 첨사(僉使)가 겸직하였다. 30개월을 만기로 하는 종6품관으로 정원은 경기도에 5명, 충청도에 1명, 경상도에 3명, 전라도에 5명, 황해도에 3명, 함경도에 3명, 평안도에 1명이 있었다, 광서8년(光緖八年), 1882년(고종19년)에 세워졌다.


대표번호

054-270-2274


주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길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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